밀가루 담합에 6,710억 과징금…공정위가 칼을 빼든 이유

체감상 ‘먹거리 가격’은 한 번 오르면 잘 안 내려간다

솔직히 마트에서 밀가루나 라면, 빵 가격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왜 이렇게 비싸졌지?” 싶은데, 막상 이유를 들여다보면 원가 탓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경우가 꽤 있다. 이번 밀가루 사건이 딱 그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7개 제분사의 담합을 적발하면서 총 6,710억4,500만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 과징금을 부과했다. 숫자만 봐도 규모가 감이 오는데, 이건 단순히 기업 몇 곳이 가격을 조금 맞춘 수준이 아니라 시장 전체의 가격 형성을 흔든 사건으로 봐야 한다.

이번 사건은 더 씁쓸한 지점이 있다. 이들 업체는 이미 2006년에 한 차례 밀가루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적이 있는데도 다시 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유형의 담합은 소비자 입장에선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가격표만 바뀌니까. 그런데 내부에서는 가격 인상 시점, 인상폭, 물량, 거래처별 공급 조건까지 촘촘하게 맞춘다. 겉으로는 경쟁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등을 맞댄 셈이다.

7개 제분사, 시장의 87.7%를 쥔 과점 구조

이번에 제재를 받은 곳은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이다. 공정위 설명에 따르면 이들 7개사는 국내 B2B 밀가루 판매시장에서 87.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거의 시장을 좌우하는 수준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한두 곳의 가격 움직임도 민감한데, 그 중심 기업들이 동시에 움직였다면 파급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표면적으로는 기업 간 거래(B2B) 시장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영향은 결국 제과·제빵·라면·국수 같은 생활 물가로 번진다. 밀가루는 식품 제조업의 핵심 원재료라서, 원가가 흔들리면 downstream 전체가 흔들린다. 그래서 공정위가 이번 사건을 민생 침해로 본 것도 이해가 간다. 단순한 업계 관행이 아니라, 소비자 지갑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항목 내용
담합 기간 2019년 11월~2025년 10월
담합 횟수 총 24차례
회합 횟수 총 55회
과징금 총 6,710억4,500만원
관련 매출액 약 5조6,900억~5조8,000여억원

가격은 빨리 올리고, 내릴 땐 늦게…전형적인 담합 패턴

공정위가 본 핵심은 가격의 방향이 아니라 타이밍이었다. 원맥, 그러니까 밀가루의 원재료는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이 원맥 시세가 오르는 구간에서는 인상분을 빠르게 반영하고, 반대로 시세가 내려가면 인하를 늦추는 식이었다. 체감상 소비자는 늘 손해 보는 구조다. 오른 가격은 바로 체감되는데, 내려가는 가격은 거의 안 느껴지니까.

담합은 단순히 “같이 올렸다” 수준이 아니다. 대형 수요처를 상대로 한 공급가격과 물량 조정, 중소형 수요처나 대리점 등 전 거래처를 상대로 한 공급가격 조정이 나눠서 진행됐다. 공정위는 이 과정이 24차례에 걸쳐 이뤄졌다고 봤다. 또 대표자급 회합과 실무자급 회합을 따로 운영하면서 큰 틀의 합의와 세부 실행을 분리한 정황도 확인했다. 이건 꽤 조직적인 방식이다. 겉으로는 영업회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가격 신호를 맞추는 비공식 조정장에 가까웠던 셈이다.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담합이 시작된 2019년 12월과 비교해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은 제분사별로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했다. 이 정도면 단순한 원가 반영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특히 상위 3개사와 하위 3개사 모두 공동행위 이전보다 영업이익률이 크게 개선됐다는 점도 문제를 더 키운다. 담합이 결국 기업의 수익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작동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2019년 12월 대비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 상승폭

제분사 A ■■■■■■■■■■■■■■■■■■■■■■■■■■ 38%
제분사 B ■■■■■■■■■■■■■■■■■■■■■■■■■■■■■■■■■■■■ 74%
제분사 C ■■■■■■■■■■■■■■■■■■■■■■■■■■■ 50%대
제분사 D ■■■■■■■■■■■■■■■■■■■■■ 40%대
제분사 E ■■■■■■■■■■■■■■■■■■■■■■■ 40%대
제분사 F ■■■■■■■■■■■■■■■■■■■■■■■■■■■■ 60%대
제분사 G ■■■■■■■■■■■■■■■■■■■■■■■■■■ 30%대 후반

공정위가 꺼낸 카드, 과징금만이 아니었다

이번 조치는 과징금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정위는 7개 제분사에 대해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도 부과했다. 쉽게 말해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스스로 정상 수준으로 다시 계산해 반영하라는 뜻이다. 이 명령이 최종 확정되면 2006년 사건 이후 20년 만에 다시 적용되는 사례가 된다. 사실 이런 조치는 흔한 편이 아니다. 그만큼 공정위가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본다는 얘기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가격 변경내역 보고명령이다. 앞으로 3년간 밀가루 가격이 어떻게 바뀌는지 연 2회 서면 보고해야 한다. 그냥 과징금만 내고 끝나는 구조가 아니라, 이후에도 가격 변동을 계속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다. 담합은 한 번 적발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후 재발 가능성까지 관리해야 하는 유형의 위반이라서 이런 후속 조치가 중요하다.

“민생과 밀접한 품목에는 실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적극적으로 경쟁을 회복하는 명령을 포함시켰다.”

이 발언이 이번 사건의 성격을 꽤 잘 보여준다. 공정위가 단순히 제재 수위를 높이려는 게 아니라, 시장 기능 자체를 다시 돌려놓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왜 이 사건이 더 크게 보이냐면

이번 사건이 유독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국민 먹거리의 핵심 원재료라는 점이다. 밀가루는 특정 산업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 라면, 빵, 과자, 국수까지 연결된다. 둘째, 과점 구조라는 점이다. 시장의 대부분을 쥔 사업자들이 함께 움직이면 경쟁 자체가 무력화된다. 셋째, 재범 성격이다. 한 번 제재를 받고도 다시 담합했다는 건 단순 실수가 아니라 구조적 유혹이 반복됐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정위가 사건 조사와 공개를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민생 침해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커진 상황에서, 감독기관도 더 이상 느긋하게 갈 수 없는 분위기다. 솔직히 이런 사건은 적발되기 전까지 소비자 입장에선 알 길이 거의 없다. 그래서 더더욱 제재의 강도가 중요하다. 담합으로 얻는 이익보다 잃는 게 훨씬 크다는 신호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밀가루 담합 사건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시장을 지배할 만큼 큰 기업들이 정말 경쟁하고 있었는가, 아니면 경쟁하는 척만 했는가. 공정위의 판단은 후자에 가깝다. 그리고 과징금 6,710억4,500만원이라는 숫자는 그 판단의 무게를 그대로 보여준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런 식의 가격 왜곡이 다시 반복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 체감상 물가는 한 번 오르면 잘 안 내려가니까, 감시도 한 번 세게 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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